“요 근래 제 일상은 늘 긴장의 연속입니다. 보름째 밤을 새우면서 매우 지쳐 있었는데, 갑자기 당
선 소식을 받아서 경황이 없습니다. 어제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태양이 제 머릿속을 밀고 들어오더니 그것이 밤에도 지지 않아서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중국과 무역중계업을 하다 15년 전부터 삶의 무게를 오롯이 문학에 둔 박재근(50·서울시 종로구 견지동)씨가 17회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자로 선정됐다.
그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8년. 1985년에 군 제대 후, 10년 동안 주류 관련업체 일을 하며 번 돈으로 건강식품 대리점을 시작했고 2000년부터 중국으로 진출했는데 계약서를 잘못 쓰는 바람에 그동안 번 돈을 거의 탕진했다. 이 일을 통해 인생의 허무를 맛보았고, 그 허무에 대한 반대급부로 하고 싶은 것을 찾던 중에 글과 만나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문학에 매달렸다.
“시는 저의 정체성입니다. 시를 보면, 그 사람이 삶을 받아들이는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어떤 상황과 직면해서 우울하거나 혹은 기쁜 감정이 생성되면 가슴이 우는데, 그때 마치 천둥이 치듯이 시가 쏟아집니다. 그래서 시는 강퍅한 삶을 일으켜 세우는 저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가 그의 정체성이 되기까지 문학은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것들과 연락을 끊고 좋은 시인들의 시 1만 편을 필사했다. 요즘 시인들이 낭만적이고 사교적으로 시를 만나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처절하게 시와 만나고 있는 그는 이번 ‘지용신인문학상’에 응모할 때에도 우체국으로 가는 순간까지 시어를 고쳤다. 일반인과 시인의 의식이 대동소이하다면 굳이 시인이라고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는 그는 이제 살짝 고개를 내민 시와의 혹독한 만남을 평생 이어나갈 생각이다.
전북 김제가 고향이고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는 박씨의 수상작은 ‘청주역’이다. 시 ‘청주역’은 12세 때 늑막염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
“어머니 고향이 충청도 ‘공주’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생물학적 버팀목의 부재는 굉장한 외로움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래서 충청도에 어머니를 상징하는 시 한 편 정도는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청주역’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의 꿈을 이뤘으니 남은 한 가지 드라마작가의 꿈을 좇아 갈 것이라는 박씨. 그는 상금 500만원을 드라마 비디오와 도서 구입비로 모두 사용할 계획이다.
“2년 전, ‘방송작가협회교육원’에서 드라마작가 초급·중급·고급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연구반을 꾸려 작품 구상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시와 소설, 드라마는 장르가 달라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드라마 대사가 시의 응축과 유사해서 굉장한 도움이 됩니다. 향후 2~3년 동안 죽을힘으로 노력해서 시든 드라마든 객관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려놓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