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가장의 일상을 그리다
입력 : 2015.01.20 14:17 | 수정 : 2015.02.14 10:39
“나는 울보 아빠입니다.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뒷모습을 보면 이 아이들이 겪어야 할 인생의 짐들이 보여 그 작은 등이 가여워 훌쩍입니다. 아무리 아파도 엄마 아빠가 있으면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안심하는 걸 보면 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 시시때때로 눈앞에 어른거리는 아이들 때문에 아무리 힘든 진흙밭 같은 일상이라도 두 발을 푹 담고 마구 뛰어다니며 일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내가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입니다. 셋째가 태어나 그 이유가 좀 더 커졌습니다. 분명해졌습니다. 못난 아빠지만 너희를 사랑해!”
![[톱클래스] 40대 가장의 일상을 그리다](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501/20/2015012001947_0.jpg)
김광석이 ‘서른 즈음에’를 노래했다면 이 남자는 ‘마흔 즈음에’를 그림 또 글로 남긴다. 이제 마흔 줄에 접어든 13년차 직장인. 세 아이의 아빠. 왕복 3시간 출퇴근길에 그는 노트와 볼펜을 꺼내 들고 쓱쓱 자신의 일상을, 또 내면에 숨어 있던 감정을 끄집어내 그린다. 붐비는 지하철에, 야근에 시달리면서도 아이들을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는 우리 시대 가장의 모습.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회의가 들다가도 퇴근길 한잔 술에 시름을 털어내고, 짝사랑했던 옛 여자의 집 앞을 지날 때면 그리움이 배어들까 창문도 내리지 못하지만 이제는 설렘조차 사라진 자신이 서글프기도 하다.
2013년 6월부터 페이스북에 올린 그림과 글로 단행본 《안녕 하루》를 펴낸 하재욱씨를 그의 퇴근길에 만났다. 정시에 퇴근해도 9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다는 그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갓 돌을 넘긴 막내를 목욕시키고 우유 먹여 재우는 일이라 한다. 그의 그림에는 아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아빠의 어깨 위에서 목마를 타고, 안기거나 업히고, 아빠의 머리를 의자 삼아 앉기도 한다. 업고 있던 아이의 얼굴이 보고 싶어 앞으로 돌려 안는 다정한 아빠. “아픈 아내와 아이를 보면 세계경영으로 정신없으신 하나님의 업무와 사색을 방해하더라도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싶어진다”고 고백하는 가장이다.
게임회사 콘셉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하재욱씨의 원래 꿈은 만화가였다.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를 뿌리치고 미대에 진학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항상 뭔가 끄적이며 그림을 그렸어요. 고등학교 때는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이 세상을 위해 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때 봤던 만화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고 ‘사람을 감동시킬, 그래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만화를 그리겠다’고 결심했죠.”
군대생활 중 단편 3편과 장편 1편을 완성했던 그는 3학년으로 복학한 후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문학적 감성을 키우기 위해 국어국문과 수업을 듣고, 창작을 위한 체력을 키우려 체육학과 수업도 들었다. 그리고 한창 만화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아버지 어머니가 차례로 돌아가셨다. 만화 관련 일을 하고 싶어 애니메이션회사에 들어갔지만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대학원을 거쳐 게임회사로 옮겼고, 그동안 결혼하고 아빠가 되었다. 어릴 적 꿈은 점점 멀어져갔다.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서른두 살 때였다.
“첫애를 낳은 지 1년이 되었을 때였어요. ‘이렇게 살다 내 인생 끝나겠다. 이럴 수는 없다’고 정신이 퍼뜩 들더라고요. ‘드로잉이라도 해보자’ 했지만, 동기부여가 잘 안 됐죠. 정치경제 등 시사문제에 관심이 많았기에 시사만화를 그리자고 마음먹고 매일 하나씩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전국시사만화협회에 가입하고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시사만화를 그렸던 그는 전업 시사만화가가 되기 위해 문을 두드렸지만, 그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6년 노력 끝에 깨끗이 포기하고 그리기 시작한 게 자신의 일상과 관련된 그림이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많이 아팠습니다. 그때부터 제 꿈이 명료해졌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불행하지 않게 하는 것,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제 꿈이 되었죠. 어릴 적 꿈도 되짚어보면 만화는 수단일 뿐,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가장 가까운 가족을 감동시키지 못하면서 누굴 감동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가 매일 페이스북에 올리는 그림은 어떤 의미일까?
“저를 버티게 하는 힘입니다. 40대 가장들은 속내를 이야기할 곳이 없어요. 있는 그대로 고민을 받아줄 멘토도 없고요. 절대 흔들려서도, 약해져서도, 울어도 안 되지요. 저는 약한 이야기들을 여기다 해버리면서 힘을 얻습니다.”
다른 40대 남성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해주는 그의 그림에서 힘을 얻지 않을까? 그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를 위해 이렇게 애쓰셨구나. 이렇게 아파하셨구나’라고.
“자식들에게는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어머니 병간호를 도맡아 하시다 과로로 어머니보다 두 달 먼저 돌아가셨어요. 가정에 충실하고 남자다운 아버지, 경상도 남자답게 무뚝뚝하고 엄하지만 속정은 깊으신 아버지였어요. 어릴 적에는 정말 많이 부딪혔는데, 아버지를 이해할 즈음 돌아가셨죠. 그래서 아쉬움이 더 커요.”
6호선 고려대역의 집에서 1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의 직장까지 서울을 가로질러 출퇴근하는 그는 “지하철에 있을 때가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나의 생 어느 부분에서 이리 깊이 몸 누일 수 있을까. 그의 품에 이렇게 안기고 싶다. 매일매일 주 5일 동안”이라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할 정도로 지하철에서 자리 잡기란 쉽지 않다. 그는 선 채로 쓱쓱 그린 그림을 매일매일 페이스북에 올린다. 그런데 거칠게 그린 것 같은 드로잉이 그의 감정선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 배어나오기에 더욱더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그림이다.
“저와 비슷한 처지의 40대 남성들이 많이 공감합니다. 그리고 그 아내들이 ‘우리 남편 불쌍하다. 가족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구나’라며 남편을 다시 보고요.”
페이스북에서 유명세를 얻으면서 책이 나오고, 그는 ‘작가’라는 호칭을 얻었다. 사람들이 그날그날의 일상을 그림과 글로 기록하게 도와주는 강의도 한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위로받고 채워지는 것 같다는 그는 “평범하고 무료한 일상도 기록을 통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업 작가가 될 생각은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아내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려면 직장이라는 터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길바닥에 내팽개쳐질 때까지 (직장에서) 버틸 것”이라며 우스개로 이야기한다. 매일매일을 버티며 살아가는 생활인이기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페이스북에 계속 올리고 있는 글과 그림은 곧 두 번째 책으로 묶여져 나올 예정이다. 그는 책의 맨 앞에 이렇게 썼다. “세 아이 유진 유건 유솔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경주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