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지/나의 이야기
슬픔도 진화했더라면
그대 그리고 나/포항
2015. 1. 9. 12:01
입력 : 2015.01.09 03:05
- 황주리 화가
"이제 정말 마지막이니까 손도 만져보고 얼굴도 만져보세요." 그러면서 그는 아까 어머니가 주신 돈을 어머니께는 말하지 마라, 그래야 맘이 편하실 거라 하면서 떠나는 동생의 수의 깊숙이 집어넣어 준다. 가는 사람의 노잣돈이 두둑해야 좋다면서.
떠나는 길은 길고도 멀지만 25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죽은 자를 보내는 방법과 과정은 놀랄 만큼 진화했다.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 아버지의 벗은 몸을 움직이며 수의를 입힐 때 들리던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요즘은 염하는 방에 들어서면 이미 수의를 입고 있는 편안해 보이는 망자를 만나게 된다.
떠난 자를 보내는 남은 자의 슬픔도 그렇게 진화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시간 반 동안의 화장(火葬)을 마치고 수골실로 내려가 만난 동생은 죽 늘어놓은 몇 개의 하얀 뼈로 남았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성의껏 모시겠습니다" 하며 뼈들을 모아 기계에 넣는 젊은 여인의 모습이 너무 담담하여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그 젊은 나이에 타인의 뼈를 그리도 익숙하게 만지는 그녀의 담담한 얼굴은 백 살도 더 되는 듯 노숙함이 느껴졌다. 동생의 뼈들을 고운 가루로 가는 시간은 찰나였다. 그리고 동생은 내가 쓴 한 줄의 묘비명으로 남았다. "영화를 사랑하던 황정욱, 여기 잠들다. 너의 총명함과 따뜻함, 그 빛나는 유머를 영원히 잊지 못하리."
- /황주리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