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극채색 볏/송재학
송재학의 「닭, 극채색 볏」 감상 / 김기택, 장석주
닭, 극채색 볏
송재학 (1955~ )
볏을 육체로 보지 마라
좁아터진 뇌수에 담지 못할 정신이 극채색과 맞물려
톱니바퀴 모양으로 바깥에 맺힌 것
계관이란 떨림에 매달은 추(錘)이다
나가고 싶지 않은 감옥이다
극지에서 억지로 끄집어내는 낙타의 혹처럼, 숨표처럼
볏이 더 붉어지면 이윽고 가뭄이다
—시집『기억들』(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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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 의하면 닭의 볏은 머릿속에 있어야 할 정신이 좁은 공간을 견디지 못하고 몸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정신의 극한에서 머리를 뚫고 나왔기에 그것은 피가 터져 나와 굳은 것처럼 붉은색이며 터져 나올 때의 형상 그대로 톱니 모양을 하고 있다. 그것은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정신의 현현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계관(鷄冠)은 계관(桂冠)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기택 (시인) 2004.11.21
새벽의 여명 속에서 우는 수탉의 울음소리는 웅장하고 생기로 넘칩니다. 새들은 사람의 후두(喉頭)외 비슷한 울대라는 음성기관을 이용해 노래를 한다죠. 울대에 공기를 불어넣으면 그 벽이 관악기처럼 떨리면서 소리가 난답니다. 새의 뇌에는 노래를 만들어내는 영역이 따로 있답니다. 그 노래들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고 '결정화crthstallized'된 것이랍니다. 언젠가 시골에 살면, 닭 몇 마리를 키우며 새벽마다 수탉의 울음소리를 듣고 싶었죠.
이 시는 첫줄부터 압도적입니다. 볏을 육체로 보지 마라! 정신이 번쩍 납니다. 수탉의 머리 위에 맨드라미꽃처럼 멋들어지게 늘어져 있는 볏을 "뇌수에 담지 못할 정신"이라고 합니다. 닭은 날개를 가졌으나 날지 못하는 비운의 조류입니다만, 그 볏의 위용은 뇌수에 미처 담지 못한 그 "정신이 극채색과 맞물려" 드러난 것으로 늠름하고 아름답죠. 초야 이곳저곳에 무명의 존재로 묻혀 사는 이들에게 뜻밖의 위안을 주는 시죠.
장석주 (시인) 2014.6.23
*Dry한 문체, 쳐내기 의 표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