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 시,발췌 시집/ 시, 사랑에 빠지다/천양희. 장석남 저/현대문학
한국을 대표하는 70인의 시인이 전하는,
아득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슬픔과 기쁨이 펼쳐진다!
시인들은 사랑의 잔인한 경험, 상처, 기다림, 고독, 일상 곳곳에 스며있는 흔적까지 찾아내 따듯한 시선을 던진다. 시인들이 이야기하는 ‘사랑’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영역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들이 담겨있다. 또 시와 함께 ‘시작 노트’를 수록하여 시 읽기와 이해의 깊이를 더할 수 있도록 했다.
천양희 시인의 「우표 한 장 붙여서」로 시작되는 이 시집은 출간 전에 ‘다음(Daum)’을 통해 먼저 발표된 작품들을 수록했다. 김혜순, 남진우, 장석남, 박형준, 안도현, 마종기, 문태준, 김용택, 장경린, 나희덕, 강은교 등 다채로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원로 중진에서 부터 중견, 젊은 감각의 시인이 써내려간 ‘사랑’에 대한 작품을 하나로 엮었다. [양장본]

-유종호 시인 서언
~사랑은 이승의 신비이자 설렘이고 행복의 약속이자 아픔의 씨앗이라고도 한다. 사랑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되어왔고 그러면서도 탕진됨을 모르고 콸콸 솟아오르는 불가사의한 샘물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에 사랑은 어떻게 와서 어떻게 머무는 것일까? 어떻게 수용되고 체험되며 또 어떻게 표출되고 분출되고 있는가? 70명의 쟁쟁한 시인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을 기리고 노래하며 알뜰한 잔치마당을 마련하였다. (서언 일부)
**우표 한 장 붙여서/천양희**
꽃 필 때 널 보내고도 나는 살아남아
창 모서리에 든 봄볕을 따다가
우표 한 장 붙였다
길을 가다가 우체통이 보이면
마음을 부치고 돌아서려고
내가 나인 것이 너무 무거워서
어제는 몇 정거장을 지니쳤다
내 침묵이 움직이지 않는 네 슬픔 같아
떨어진 후박잎을
우산처럼 쓰고 빗속을 지나간다
저 빗소리로 세상은 여위어가고
미움도 늙어 허리가 굽었다
꽃 질 때 널 잃고도 나는 살아남아
은사시나무 잎사귀처럼 가늘게 떨면서
쓸쓸함이 다른 쓸쓸함을 알아볼 때까지
헐한 내 저녁이 백년처럼 길었다
오늘은 누가 내 속에서 찌륵찌륵 울고 있다
아믐이 궁벽해서 새벽을 불렀으나
새벽이 새 벽이 될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때
사랑은 만인의 눈을 뜨게 한 한 사람의 눈먼 자를 생각한다
누가 다른 사랑 나만큼 사랑한 적 있나
누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나
말애봐라
우표 한 장 붙여서 부친 적 있나
-진술시, 시적 화자가 느껴지는 것
**그 사람은/신달자**
예고 없던 바람이 폭동처럼 크게 어깨를 털고 지나간 뒤에
과수밭에는 과일이 우수수 떨어지고
제법 큰 나무들이 허리가 부러진 채 거리에 드러눕고
자동차들 기우뚱 날 듯 비틀거리고
우지끈 부실한 지붕들이 미끄러져내리고
날리고 뒤집히고 찢기고 꼬이고 깨지고 그렇고
도리없이 세상은 온통 이별로 낭자하고
땅에 것들 허공으로 치솟아 난동을 부리며 갈 곳 없고
떨어져내려도 제자리가 없고
자리이동을 하여 모양 또한 일그러졌고
그러하지만 나는 알고 알고 있고
오직 사람 하나 꿈쩍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젊은 얼굴로 웃고 있고
그대로 변함없고
내 사랑으로 피면 폭동의 바람쯤이야 그럼 그쯤이야...
**도깨비기둥/이정록**
당신을 만나기 전엔
강물과 강물이 만나는 두물머리나 두내받이
그 물굽이쯤이 사랑인 줄 알았어요
피가 쏠린다는 말
배냇니에 씹히는 세상 어미들의 젖꼭지쯤으로만 알았어요
바람이 든다는 말
장다리꽃대로 바져나간 무의 숭숭한 가슴 정도러만 알았어됴
당신을 만난 뒤에샤
한밤 강줄기 하나가 쩡쩡 언 발을 떼어내며 달려 오다가
또 다른 강물의 얼음 진군과 맞닥뜨릴 때
그 자리, 그 사아빛, 그 솟구침, 그 얼음울음
그 빠개짐을 알게 되었지요
당신을 만나기 전엔
얼어붙는다는 말이 뒷골목이나 군인들의 말인 줄만 알았지요
불기둥만이 사랑인 줄 알았지요
마지막 숨틍을 맞대고 강물 깊이 쇄빙선을 쳐받은 자리
흰 뼈울음이 얼음기둥으로 솟구쳤지요
당신을 만난 뒤에야
그게 바로 도깨비기둥이란 걸 알았지요
열 길 물속보다 깊은
한 길 마음만이 주춧돌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강물은 흐르는 게 아니라 쏠리는 것임을
알았지요. 다 얼어버렸다는 것은 함께 가겠다는 걸
금강기둥으로 지은 울음 한 채
먼 하늘주소까지
**섬/문태준*
조용하여라
저 가슴
꽃 그림자는 물속에 내렸다
누구도 캐내지 앟는 바위처럼
두 손을 한가운데에
모으고
누구든 외로워라
매양
사랑을 묵상하는
저 섬은
-묘사시
**새들이 조용할 때/김용택**
어제는 많이 보고 싶었답니다
그립고, 그리고
바람이 불었지요
하얗게 뒤집어진 참나무 아피리들이
강기슭이 환하게
산을 넘어 왔습니다
당신을 사랑했지요
평생을 가지고 내게 오던 그 고운 손길이
내 등 뒤로 돌아올 때
풀밭을 보았지요
풀이 되어 바람 위에 눕고
꽃잎처럼 날아가는 바람을 붙잡았지요
사랑이 시작되고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
그리고 사랑하기까지
내가 머문 마을에
날 저물면
강가에 앉아 나를 들여다보고
날이 새면
강물을 따라 한없이 걸었지요
사랑한다고 말할까요
바람이 부는데
사랑한다고 전할까요
해가 지는데
새들이 조용할 때
물을 보고
산을 보고
나무를 보고 그리고
당신이 한없이 그리웠습니다
사랑은 어제처럼
또 오늘입니다
여울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을 만들고
오늘도 강가에 나앉아
나는 내 젖은 발을 들여다봅니다
-나이 초월, 性초월한 시. 리드미컬한 시
**사랑/이승훈**
그대 덥석 깨물고 싶은 저녁도 있고
덥석 안고 싶은 저녁도 있고
덥석 먹고 싶은 저녁도 있지
덥석 주저앉고 싶은 저녁
그대 덥석 움켜쥐고 도망가고 싶은 저녁
그대 덥석 깨물고 싶은 저녁
그러나 언제나 그대 손 흔들고 떠나네
**봄, 양화소록**
올봄 하릴없어 옥매 두 그루 심었습니다
꽃 필 때 보자는 헛된 약속 같은 것이 없는
봄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군요
내 사는 곳 근처 개울가의 복사꽃 활짝 피어 봄빛 어지러운데
당신은 잘 지내나요
나를 내내 붙들고 있는 꽃 핀 복숭아나무는
흰 나비까지 불러들입니다
당신은 잘 지냅니다
복사꽃이 지는데 당신은 잘 지냅니다
봄날은 가는데 당신은 잘 지냅니다
아슬아슬 잘 지냅니다
가는 봄 휘영하여 홍매 두 그루 또 심어봅니다
나의 뜰에 매화 가득하겠습니다
-양화소록/강희안 저서로 꽃과 나무 재배법 관련 책
**아무렇지도 않게/윤제림**
칠 년 만에 다시 한방이다
좁고 낮고 춥고 어두운 방이지만
나는 저 남녀가 떠나온 곳을 안다
낯선 방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나란히 누워
지금 막 잠에 떨어진
저 몸뚱이뿐인 난자와 여자의 이름도 안다
성만 밝혀두자
'경주 최 씨와 김해 김 씨.'
굳이 다지자면 김 씨가 더 멀리 걸어왔다
더 많은 여관과 술집과
시장과 의자의 거리를
여자 혼자서
그렇지만
정물靜物은 어디 쉬운가
"Don't disturb
-산책로의 합장묘가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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